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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냥 삶이 싫어 떠난 놈이냐?? 글쎄다... 남들이 봤을땐 성공한 놈이였다. 한달에 200만원 이상씩 저축하고, 회사에서 마련해주는 차량, 호텔, 핸드폰, 식사 등 모든것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스펙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끄는 것은...??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가면서 고통받고 있다. "인생은 원래 고통스러운 거야" 라고 이야길 한다. 즐겁게 사는 사람을 보면 철이 덜든놈. 세상을 모르는 놈. 어린놈. 이렇게 정의가 된다. . 도데체 왜?? 세상은 슬프고, 고통스러워햐 나나. 내가 아는 세상은 즐겁고 모두가 행복하며 사람이 살만한 세상.. 그런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왜? 사나? 차라리 나는 살지않고 죽음을 택하겠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거기에 하나의 모범사례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즐겁게 살아도 " 안죽고 살아있다" 모두 즐겁게 살고 즐겁게 사는것에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라고.. 내가 죽을땐 결론이 날것이라고 믿는다. 즐겁게 살려고 하다보니 비참해 졌거나. 아니면 정말 멋지게 살았거나.. 이런 결론을 보고 즐겁게 살아온것을 증명해 보인다면, 많은 이들이 도전할 것이고. 실패한다면. 지금 그들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니.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성공으로 인해,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우리세대의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선 이런 도전조차 금지되어 있지는 않은가??

두려움?

모든 이들이 이야기 한다. 계획이 뭐야? 그럼 어떻게 살아 갈려고. 무책임 하구나. 넌 세상을 몰라. 등등 안좋은 소리가 쏟아진다. 그런데 난 그냥 이렇게 기계처럼 돈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내 삶이 더 두려웠다. 아무계획도 없지만 이러다가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지나버리고 남는 것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접고 살아야 했던 내 과거만이 남을 까봐 그것이 두려웠다. 내일 당장 실패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더라도, 도전해 보련다 그리고 실패만이 남더라도 난 새로운 길로 들어 서련다. " I haven't failed, I just 100 thousands way that won't work "

나는 왜 한국땅을 떠나야 했는가.

나는 왜 떠나는가? ... 한국땅을.. 한국땅. 현실에 처한 우리들(청년들)을 보라. 치열한 경쟁속에서 한번만 낙오되어도 88만원 세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운이 좋아 경쟁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돈과 경쟁의 굴레는 계속된다. 서울의 조그만한 전세집 혹은 월세가 50만원, 5~6천 이다. 아니.. 단적으로 고시원이 30만원이다. 교통비. 핸드폰. 식대를 제하고 나면 마이너스 경제로 가는 것은 눈에 보이는 길. . 경쟁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조금 더 숨쉴 수 있는 집. 김밥천국을 벗어난 식사를 하고나면 남는 것은 또다른 경쟁만 남아있을 뿐이니. 나는 지금까지 해온 경쟁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는 것 뿐이다. 아니 이 경쟁을 영원히 하면서 이기는 것 보다, 경쟁에서 벗어나서 지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 아마 우리들은 이해할꺼야.. 다만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꺼고.-- " You need a little madness, or else you never dare cut the rope and be free"

우리의 삶.

대한민국 시골에서 태어나. 고기잡고, 수영하고, 얼음깨고 놀던 시절이 지나고... 머리 빡빡깎고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에서 시키는 것.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했던 시절. 밤낮없이 공부해 대학교에 입학. 군전역 후 다시 경쟁사회로 회귀. 대학와서는 경쟁이 없을 줄 알고 있던 나로선 사회에 대한 배신감으로 방황하다. 갈곳없는 백수가 되었다. "2006년 어느날."

직장 그만두기

직장 그만두기. 1년도 채 안된 직장을 그만두는데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지 부족이다. 책임감 없다. 이것도 못 버티고 도데체 뭐할 수 있겠냐??..." 수많은 질문과 모욕이 쏟아질 게 뻔하다. 칭찬보다는 서로 헐뜯고 경쟁하는게 지금 우리 문화 아닌가? 그래 이해한다. 하지만 당당하게 그만두기로 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얼마나 수긍하고, 참고 견뎌왔는가? 내 꿈을 발견한 이상 모든 위험과 험담을 무릅쓰고 내 자신을 위해 나의 꿈을 따르기로.. I'm not a cyclist I'm a life savor. "2009. 08. 26"

인도 네팔 여행과 깨달음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고 한동안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꿈도, 지금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도. 인도, 네팔 여행을 마친 후 태국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며 지내면서도 어떤 목적이 없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목적도, 무엇인가 더 배우고자 하는 목적도 없었고, 현재의 삶에 대한 정신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대화를 놓치곤 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왜 내가 그렇게 되었는지 나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인도와 네팔에서의 여행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여행을 통해 나는 분명히 느꼈고 배웠다. 그런데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이 안 되었다. 내가 뭘 배웠고 느꼈는지. 그렇게 일 년 정도를 헤맸다. 내가 뭘 배웠고 느꼈는지 찾고 싶었다. 그렇게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태국남부 끄라비에서 등반에 빠졌다. 그때 약간의 신적인 언어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깨달음을 얻었다. 혼란스러웠던 머리속이 너무나 깨끗해졌다. 단 한순간, 죽음을 경험하고 혼란은 해소되었다.  그때, 난 너무나 행복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따뜻한 나라에서 등반하고 쉬고 또 등반하고 쉬고, 그 외에 아무것도 없이 등반만이 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살았다. 그 외에는 전부 부질없는 일로 간주하고 지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너무 행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사라졌다. 그냥 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등반을 하며 죽고 싶다고 느꼈다. 죽음을 보았다. 아름다운 죽음. 더 이상 이루거나 얻고자 하는 것이 없는 편안한 죽음. 이룬 것도, 이룰 것도 없었다. 행복한 기운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거였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을 떴다. 난 그래도 숨 쉬고 있었다. 눈앞에는 목숨을 걸고 등반을 하는 등반가들이 보였고, 그 순간 내가 살아가는 목적을 찾았다. #개똥철학 #인도네팔 #깨달음 #행복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 호주의 식기 닦기 할아버지

호주에서 웨이터로 일을 하고 있을때 우리 주방에 설겆이 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지금 하는일은 매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하루 네시간 식당 주방에 나와 설겆이와 청소를 한다. 그리고 가끔 집앞의 게스트 하우스 청소일도 하곤 한다. 주요 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정부보조금도 조금 받고 할아버지 창고방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일주일에 50불씩 받고 있다.  이 할아버지도 같이 살게 된건 식당 웨이터 일을 구하면서 게스트하우스 숙박 비용을 줄여보기 위해 집을 알아보고 있던 중, 식당 주인의 소개로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자기 창고를 비워줄테니 좀 지저분 하더라도 있으려면 있으라고 하여 들어가게 되었다.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여러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 아닌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비록 창고였지만, 침대와 이불 서랍장이며 가구도 있었다.) 가격이 주 당 오십 달러에 있을 수 있었기에 흔쾌히 오케이를 했었다. 그리고 집 앞의 마당도 좋았고 작지만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수영장, 깨끗한 주방과 거실 등 여행을 시작 한 이후 가장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일하지 않는 오전에 영어공부 하는 나를 위해 동화책도 읽어주고, 자신의 젊은 날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쩌면 외로운 그에게 언제나 가까이 있는 나는 그의 말동무 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할아버지의 삶을 나도 몰래 관찰하게 되었는데.. 일이 없는 오전에는 자신의 마당과 작은 수영장을 관리하고 일을 마치고 온 저녁에는 매일 피아노를 치며 그날의 일과를 마치곤 했다. 어디서 배운 적도 없고, 음표도 읽을 줄 모른다고 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아름다운 음으로 표현해내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게 있다. 식당에서 보조 일을 하면서 모아 놓은 돈도 거의 없었는데 살아가는 삶의 질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앞으로 살아 가야 할 모습보다 훨씬 여유롭고 멋져 보였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