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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노키 게스트하우스

  노키   아주머니   약 10년 만에 토니를 만났던 치앙마이에 다시 들렀습니다. 여행으로 간 것은 아니고, 비행근무로 가게 되어 24시간 동안만 머물게 되었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치앙마이는 가슴 깊은 곳에 즐거웠던 추억이 많은 곳입니다. 약 한 달 정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 순간들을 상상하며 치앙마이 도심을 산책 하는데 눈에 익숙한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에서 여행하는 토니와 비를 피해 식사를 함께했던 식당으로 향했던 길이 기억나는 거죠. 확실하진 않았지만, 그 길임을 느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길을 쭉 따라가니 토니와 함께 즐겨 찾던 식당이 있었습니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고 10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공간이 너무나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이곳을 찾으니 나도 모르게 예전에 묶었던 숙소 도 떠올랐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하고 싶다고, 오랫동안 치앙마이에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며 함께 숙소와 게스트하우스 하기 좋은 집들을 함께 찾아봐 주고 가끔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직접 음식을 해서 나눠 먹기고 했던 마음 좋은 주인 아주머니도  함께요.   숙소가 골목 골목 구석진 곳에 있어 그때도 우연히 돌아다니다 발견한 곳인데 가격도 6000원 밖에하지 않아 바로 장기투숙을 한 곳이며, 토니를 처음 만난 곳이죠. 그렇게 추억과 희미한 기억을 따라 발걸음을 하나보니 "노키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보였습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위치도 몰랐었는데 그 장소에 도착하니 저절로 기억이 났습니다. 게스트하우스로 걸어가는 도중"노키"라는 이름이 생각났고, 간판을 보자마자 주인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숙소 안에 있는 주인과 만나자마자 서로 알아봅니다. 먼저 오랜만이다라고 인사해주고, 잘 지냈냐고 물어봅니다. 정말 기억나요? 라고 물었더니 10년 좀 넘은 거 같은데.. 이제 살도 조금...

비트코인과 블럭체인. - 도박인가 미래기술인가? (2018년 1월 17일)

 비트코인과 블럭체인. - 도박인가 미래기술인가?  정답은 둘 다 맞는다는 거죠.. 아파트가 집이냐 도박이냐를 묻는다면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접근하냐에 달려있듯이요. 도박은 근절해야합니다. 하지만 기술은 발전시켜야지요.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비트코인 도박하시는 분들은 도박하지 마세요. 투자하시는 분들은 투자하시면 됩니다. 같은 것 같아도 전혀 다릅니다.  이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써보려고 합니다. (2018. 1. 17) 어제오늘 비트코인이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습니다. 고점 대비 반토박정도 났죠. 어떤 코인들을 1/10 정도 가격으로 내려간 것도 있고,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는 코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1/2 정도 가격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다들 폭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보면 아직도 10배 이상 올라있습니다. 그럼 이게 폭락일까요? 폭등일까요? 생각하기 달려있습니다. 코인의 가치가 무한정 올라갈 순 없습니다. 어떤 가치에 기반을 두었느냐에 달려있지만 비트코인은 자산이라는 가치에 기초하고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저장하고자 하는 자산가치입니다. 사람들은 부동산에 투자합니다. 그리고 금, 오일, 예술품, 달러, 현금 등에 투자하여 자산을 저장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저장을 하느냐에 따라 코인가격은 형성됩니다.  지금은 등락폭이 커서 얼마의 가치가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트코인대비 달러와 다른 가치들의 변동성이 너무 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한쪽에서 보면 다른쪽은 변동되는 것 처럼 보입니다. 마치 지구에서 보면 태양이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요. 사실 은하계에서 보면 태양도 돌고 지구도 돕니다.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다릅니다. 약간 이상한것 같습니다. 몇몇의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는 일정한 상품을 돈으로 받지 않고 비트코인으로 받습니다. 기준가격이 비트코인입니다. 그럼 그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되는 ...

바보와 천재 - 태국 프라낭

 태국 프라낭에서 암벽등반을 할 때이다. 암벽등반을 할 때는 2인 1조가 되어 서로 파트너의 목숨을 책임져 주어야 하므로 아무하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했던 파트너와 등반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처럼 혼자 여행을 하며 등반을 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서로의 등반 실력과 매너, 성격, 등반 스타일이 맞는 파트너를 찾아 등반을 하기도 하는데, 서로의 등반 파트너가 되었다는 것은 무한한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게 등반을 하고 나면 줄 하나에 서로 연결되어 등반을 했다는 생각에, 혹은 서로의 목숨을 줄 하나와 서로에 의지해 함께 했다는 무의식의 영역 때문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치 연인처럼.  프라낭에서 몇 달 등반을 하고, 오랫동안 함께 했던 등반 파트너가 자기 나라로 돌아 갔을때 나는 새로운 등반파트너를 찾아야 만 했다. 그렇게 나처럼 파트너 없이 여기에 온 클라이머 중에 영국에서 온 TOM을 만났다. 등반 실력도 아주 훌륭하고, 심성이 매우 착한 녀석이었다. 나를 위해서 인지 영어도 약간 어눌하게 혹은 천천히 사용 했다. 심지어 그는 너무 단순한 단어 몇 개의 조합으로 말을 하려고 만 하여 나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같은 대화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할 때가 많았다. 천천히 이야기를 해주고 또박또박 말을 하지만 단어 사용의 종류가 내가 이야기하는 만큼보다 더 적어 보통 몸짓으로 소통을 했을 정도였다. 배려가 심한 건지 내가 영어를 하나도 못 할거라 생각했는지 우리는 단어 한 두개로 항상 대화를 했다.  그렇게 내가 톰과 어울려 다닐 때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톰과 어울려 다니는 것에 우려는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배려 한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준 것이었는데, 톰이 너무 바보여서 즉, 지능이 좀 떨어지고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톰이 영어를 왜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는지 이해가 되었...

비트코인과 명상

비트코인에 대해 2017월 12월 7일 새벽  비트코인이 한 달 간 세배 정도 뛰었다. 그리고 최근 며칠간 최고점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해외의 거래소와 차액이 20% 가까이 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에서의 시세는 떨어질 줄 모르게 오르고 있다. 지금 이 시작 1700만원을 향해가고 있다. 결국, 비트코인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어느 순간 수천만원, 수억원으로 오를 것이다. 2018년의 신흥 부자는 비트코인으로 탄생할 것이다. 나는 이 비트코인이라는 인간의 욕심의 파도에서 파도를 즐기는 프로 서퍼가 되는 것이다. 파도 속에 빠져 챠트를 매일 보며 떨고 있는 미친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현상을 그냥 바라보고 즐기는 사람이 되는 거다. ‘만일’ 중에서 - 루디야드 키플링. - 류시화 옮김 한 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2017년 12월 8일 ‘비트코인 전 재산’ 한 번쯤 큰 내기.  난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큰 돈, 어쩌면 앞으로도 가져보지 못 할 큰돈을 전부 투자해 큰 내기를 걸었다. 더 큰 비트코인이 될지 혹은 이대로 쓰러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과연 내가 이 비트코인이 없더라도 이처럼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더라도 변함없이 내 가슴과머리가 날 위해 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설령 나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더라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큰 내기 한번쯤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큰 도전..  하지만 진짜 도전은 큰 부를 얻는 것과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정심을 ...

생각의 힘

2017년 12월 6일   시인 류시화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 이런 게 있다.   어떤 사람이 링컨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농촌 출신이면서 어떻게 변호사가 되고 미국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습니까?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마음먹은 날, 이미 절반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    나는 생각의 힘을 믿는다. 아니 믿음의 힘을 믿는다. 이 종교적이며 미신적인 생각은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을 통해 점점 더 확고해졌다.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한 날, 나는 이미 조종사가 될 것을 믿었고 멋진 조종사가 되기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준비해 나아갔다. 언제가 될지는 몰랐지만, 반드시 될 것을 알았기에 서두르지 않고, 과정을 헛되게 보내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었다. 어쩌면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조급함과 걱정을 덜 수 있어 각각의 과정에 더 열심히 했을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지금까지 과정을 잘 수료해 온 것일 수도 있다.      20대에 나의 목표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도 포기했고,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랐다. 그림 그리기에 도전해 보았고 여러 악기를 연습해 보기도 했지만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여행을 했고, 회사에 다니다 문뜩, 여행기를 썼다. 언제나 맞춤법이 틀리는 사람이었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었는데, 친구들에게 내가 경험했던 좋은 일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여행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꿈꾼다. 진정한 예술가를. 그리고 지금 꿈과 목표가 있다. 뮤지션, 화가, 작가가 될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다고, 수많은 화가와, 음악가 그리고 작가가 있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삶을 멋진 예술처럼 살았다. 이들을 부르는 장르는 없지만, 나는 그들을 인생예술가라고 부른다...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야 할 것

 인도의 명상가 오쇼는 세상은 기차역 대합실과 같다고 했다. 대합실을 집이 아니기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고. 대합실의 의자, 그림 등 대합실의 물건 어느 것도 그대의 소유가 아니다고. 물론 이용은 할 수 있고, 그림을 보거나 의자에 앉아 쉴 수 있다 그러나 그대의 것은 아니다... 몇 초, 몇 분, 몇 시간, 며칠이 아닌 수십 년을 지내야 하는 대합실이며.. 7시간을 있건, 70년을 있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시인이자 인도여행자 류시화는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누구나 여행자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여행을 온 것이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 . 이 여행을 마치고 떠나갈 때. 나는 신 앞에 서서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나는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이 않았노라고, 그래서 늘 길 위에 서 있고자 노력했노라고, 내 배움은 학교가 아니라 길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오쇼의 말처럼, 대합실을 떠날때 우리는 대합실의 물건은 가지고 갈 수 없다. 진짜 내 것만을 가지고 떠나야 한다. 세상을 떠날때 우리는 세상의 물건들을 가져갈 수 없다. 진짜 내것만을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럼 진짜 내것은 무엇일까? 그 대답을 류시화가 해주지 않았나 싶다. 여행에서의 경험. 우리는 인생이라는 기차역을 떠날때 이 세상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떠날 수 있다. 그게 진짜 내것이다. 진정한 나의 소유물. 나머지는 전부 대합실의 물건일 뿐이다.   #오쇼 #류시화 #지구별여행자 #인생 #대합실 #70년

비행 자체로서 얻는 행복

2016년 여름 어느날 ..  나는 이런 고민에 빠져있었다. 비행 자체로서 얻는 행복은 무엇인가. 비행을 통해 얻는 것 말고 진짜 비행으로 느끼는 행복감은 무엇인가.. 내 인생을 투자할 만큼 비행이 나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나? 그런 고민이 머리속을 헤집고 다닐때, 싸이판으로 비행을 갔을때 수영장을 관리하고 있는 Fital을 만났다. 수영장 관리인 Fital에 대해 쓴 글 : 행복한 수영장 청소부 다음 글은 그를 만난 후 나 자신을 되돌아 보고, 생각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다.. --------------------------------------------   파일럿의 삶을 시작한 지 약 7년이 지나간다. 처음 3년간은 에어라인 파일럿이 되는 것을 목표로, 교육과 경험을 쌓는 즐거움으로 매 비행을 했었고, 에어라인 입사 후 1년간은 정식 에어라인 조종사가 되기 위한 또 다른 교육을 받는 시기였으며, 다음 1년은 회사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2년 정도 에어라인의 삶을 살고 있다.    비행을 알고부터 그리고 시작한 이후로 에어라인 파일럿을 꿈꿔왔다. 그 꿈을 이룬 지금,  나는 이 꿈의 직업에 대한 스스로의 목표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좋은 직업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일한 만큼 회사에서도 인정도 받고, 보수도 괜찮으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도(다른 누구와 경쟁해서 이기거나, 속일 필요 없이) 일을 할 수 있고, 거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을 수 있는 직업이다.  그렇게 좋은 일임에도, 이 직업에 대한 핵심을 지금 찾지 못하고 있다. 왜 비행을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그 본연의 즐거움을...   목표가 있을 때에는 그냥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것에 대한 성취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 본연의 즐거움이 때론 희미하게 느껴지더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본연의 즐거움이 때론 힘든 비행 생활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작은 경비행기를 타면서 기동 하나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