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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비에서 만난 팟씨유 요리사

 



 나는 독실한 기독교 어머님 아래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서울에서 시골로 아버지를 만나 이사 온 어머님은 혼자 교회에 갈 용기가없어, 성당에 다니시는 증조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다. 그래서 나도 어렸을 적엔 성당에 줄곧 다녔다. 어린이 미사에도 참여하고, 프랑스에서 오신 신부님과 자주 만나 교리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복사라는 역할을 맡아 하기도 했다. (*복사: 신부님 곁에서종을 울리거나 물건을 나르며 예식을 돕는 사람을 뜻한다. 내가 다녔던 성당에서는 주로 어린이들이 했었다.) 이 후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를 겪으며 성당에 다니지 않다가, 고등학생 땐 친구를 따라 여학생들이 많은 교회에 다녔다. 군에 입대해서는 불교에 심취해 절에 다녔고, 상병휴가때에는 부석사에서 숙박하며 스님들과 불경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네팔과 인도를 여행을 하며 흰두교의 매력에 빠졌고, 다시 불교의 나라 태국에 여행을 왔다가 무슬림 지역으로 알려진 태국 남부 크라비 지역까지 왔다.
 

 태국의 종교가 불교이나 크라비가 위치한 남부지역은 역사적으로 말레이시아와 가까워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슬림을 믿고 있다. 아직도 크라비에서는 종교 때문인지 독립을 요구하며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크라비의 숙소 앞에는 무슬림 사원이 있어 정해진 시간마다 신성한 음악이 나와 그 쪽 방향으로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 곳에서 나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매일 가던 식당이 있었는데, 이 마을엔 식당 이래봐야 몇 개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한 곳을 정해 몇 달 동안 이용했었다, 이 식당의 요리사분은 혼자서 수십 가지의 요리를 만들어 내었는데, 모든 음식이 너무나 맛있어 그 곳에 머문 기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매일 이용했어도 마치 집밥처럼 질리지 않고 매일 새로웠다.


 이 식당은 크라비 해변 옆, 인적이 드문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몇몇 지역사람들은 다들 <선셋 식당>이라고 불렀는데, 선셋이 보이는 곳도 아니었음였고, 허름한 반쯤 노천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 곳이었지만 음식만큼은 일품이라 선셋 시간쯤이되면 꾀나 붐비는 곳이라 선셋 식당으로 누군가 이름을 지은 것 같았다. 그 이름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에서도 “팟씨유”는 태국을 여행하면서 어떤 곳에도 뒤지지 않을 최고의 맛을 주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장소이다.

 얼굴도 익히고 친해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특별이 친해진 계기가 있었는데, 무슬림 의식 중 할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할라를 했다”고 말을 했다. 실상, 그들은 종교의식으로서 행하는 것이고, 우리는 의학적 청결을 위해 하는 것이니 같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방법 자체는 포경수술과 같은 것이라 볼 수도 있으니까 약간은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 말 이후 식당 주인과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 나는 무슬림 의식을 함께한 동료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여행자이었지만 그들의 형제가 되었다. 밥을먹을때, 우연히 식당을 지나가게 되면 함께 나눠 먹기도 했고, 돈이 부족해 음식 하나만 달랑 시켜도, 몇가지 다른 음식들과 음료를 만들어 주며 자신들의 음식과 문화에 대해 설명도 해주었고, 라마단 기간에는 함께 금식을 하며 음식의 소중함과 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같이 느끼기도 했다. 오랬동안 여행을 하며 자유롭게 지냈지만, 친구가 그리웠고, 가족이 그리웠던 나에게 무슬림 사람들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가족이 되어주었다. 따뜻한 무슬림 가족! 사는 방식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고, 종교도 달랐지만 여행자인 나를 형제로 받아주고 나의 여행을 걱정해 주는 그들이 있어, 때론 외롭게 지친 여행이 포근했고, 마음 구석구석의 쓸쓸한 곳을 제거해 주었다.


 요즘도 가끔 뉴스에서 듣는다. 각 나라의 종교전쟁, 무슬림의 테러, 이스라엘과 그 주변국의 분쟁 등등. 포경수술 하나로 형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니 눈 인사 한번 만으로 우리 모두 얼마나 서로를 필요로 하고 고마운 사람들 인지 알 텐데 쓸쓸한 소식만 뉴스에서 들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언젠가 피부, 종교, 삶의 방식을 떠나 우리 모두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는 그날을 상상하면서 크라비 최고의 요리사가 해주는 팟씨유를 먹는 날을 기다려 본다.

댓글

  1. 200% 공감^^맞아맞아 진짜 그래! 재밌다^^ 아름다운 소울의 정상인.. 알아갈수록 놀라고 있음. 사진 완전 영하심..크라비가 그렇게 좋다며? 잘 몰랐는데, 역시 가슴 따땃한 스토리가 나오는 구나. (터키에서 육로로 이란으로 넘어가서 지내는 동안, 또 이란에서 육로로 파키스탄을 넘어가서 지내는 동안 온갖 고생?속에서도 무슬림 컨트리의 수 많은 친구들이 보여주고 베풀어주었던 환대와 친절과 사랑과 케어와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많아..감동 그 자체ㅜㅜ 덕분에 잊고 있던 가슴 따듯한 추억과 경험들 마구 떠올라..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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